지금의 PR인들은 AI보다 창의적인가

[인터뷰]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김경해 대표이사

“PR은 고객을 이끌고 가야하는 일…시키는 것만 해선 안 된다”
“돈보다도, 고민 끝에 목표 달성의 즐거움, 드라마에 집중해야”
더 싸게 더 싸게…가격 경쟁이 PR산업 성장 막는 악순환 시작점

ai주식/주식ai : 더피알=김병주 기자 | PR은 계속 변하고 있다. 생성 AI의 등장 이후 PR산업은 빅데이터 해석과 인사이트 도출에 일대 혁신을 맞았다. 커뮤니케이션 개인화에 맞춰 콘텐츠 제작과 배포의 양상도 달라지고, 전보다 더 빠르게 많은 이해관계자와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

카지노 : 기술적인 변화를 선도하는 이들은 젊은 세대일 수 있지만, 오랜 시간이 준 경험과 통찰이라는 선물을 가진 이들의 중요성은 떨어지지 않는다.

특히 현장에서 뛰면서 한 분야를 개척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유하고픈 노하우와 에피소드도 여럿 갖고 있기 마련이다.

한국에서 PR 개념 자체가 생소하던 1987년 10월 국내 최초의 PR 컨설팅 그룹인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를 설립한 후 지금까지 현업에서 일하고 있는 김경해 대표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36년간 이어져온 우리의 PR이 과연 새 도전과제 앞에서 또 한 번 확인해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의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사무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지금의 PR인들은 AI에 밀려나지 않을 정도로 창의적인가

김 대표가 PR업계에서 36년간 일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라 하면 단연 ‘1만원짜리 한글 명함으로 2억을 번’ 이야기다. 흔히 인사할 때 주고받는 명함도 창의적인 아이디어 하나를 곁들이면 효과적인 마케팅 툴이 된다.

김 대표는 최근 작고한 월간 영문지 ‘디플로머시(Diplomacy)’의 임덕규 발행인이 1977년 7월 초창기 경영난을 단번에 해결한 MPR 사례를 술회했다.

당시 세계 무기 거래 큰손이라는 트리아드 그룹의 아드난 카쇼기 회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러 방한한다는 뉴스가 났다. 이를 읽은 임 발행인은 사우디 대사관을 통해 도착 날짜와 시간을 알아냈다.

오후 3시 반에 조선호텔로 온다던 카쇼기 회장은 새벽 1시 반이나 되어서야 동아건설 최원석 회장하고 같이 취해서 들어왔다. 거기서 임 발행인이 건네준 만원짜리 한글 명함은 다음날 아침 카쇼기가 박정희 대통령을 접견할 때 잘 쓰였다.

브리핑 때는 콧대가 높고 눈치 볼 것도 없는 사람이라던 카쇼기 회장이 한국말로 “저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카쇼기입니다”라며 겸손하게 한글 명함을 건네자 박 대통령은 사람을 달리 보게 됐고,원래 30분 정도로 예정되었던 면담이 추후 점심 약속으로 이어졌다.

당시는 한불종합금융(Korea-France Merchant Banking)이 만들어질 때였는데, 우리나라 건설업계가 실적이 없어서 외국에 은행 지불 보증이 잘 안 되던 차였다.

지불 보증을 고민하던 박정희 대통령은 점심 자리에서 당시 달러를 제일 많이 보유하던 대한항공과 카쇼기를 엮어줬다.

노른자위 회사까지 만들게 된 카쇼기는 신이 나서 자기한테 명함 전해준 임 발행인을 찾아 답례로 뭘 해주면 좋을지 물었다. 임 발행인은 자신이 발행하는 잡지 제일 뒷면에 1년 광고를 내달라 했다. 2000만원을 불렀는데 그 자리에서 2억 원을 달러 수표로 받았다.

김 대표가 이 일화에서 주목한 점이 바로 임 발행인의 창의성이다.

“생성AI와 챗GPT라는 것이 상당히 진일보한 기술이긴 해도 완벽한 수준은 아니죠. 이 도구로 업무의 80% 정도를 해결할 수 있다 해도, 나머지 20%를 채워주는 건 인간의 창의력입니다. AI가 이런 기지를 발휘하지는 못하잖습니까.”

“그냥 어디 신문에 기사 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죠. 돈 2억보다도, 고민 끝에 목표하던 걸 달성했을 때의 즐거움, 그 드라마에 집중해보십시오. 우리 PR하는 사람들도 이런 드라마가 갖춰져야 10년, 20년 가는 장기고객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할루시네이션 문제가 나오고 있는 생성AI 같은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는 데 있어서 PR인들이 주의해야 할 점을 묻는질문에도 김 대표는 ‘악의가 더해진창의성’의 문제를 말했다.

“이미 보도자료를 만들 때 원하는 대로 여론조사의 답을 유도할 수가 있는 시대입니다. 챗GPT에게 ‘우리 진영이 15% 차로 이긴다고 나오도록 질문지를 구성해봐라’ 혹은 ‘우리 후보 지지도가 상대에 비해 5% 뒤처진다고 나오게끔 질문서를 작성해봐라’하는 식으로 공중에게서 자신의 목적에 맞는 효과적인 답변을 유도하는 질문만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러니 챗GPT같은 것으로 인사이트 같은 것을 얻어내려 한다면 큰 방향을 잡는 데 참고만 하고, 나머지는 덮어버리는 게 낫습니다. 과거의 자료를 축적한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자기 창의력을 발휘해야 법적인 문제도 없고 경쟁력을 갖추지 않겠습니까.”

“인간의 역할은 최종 결정, 판단입니다. 지식의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창의성, 통일성, 윤리성 등 기계가 대체하지 못하는 부문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입지를 위협받을 것이라는 점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가격 정책도 PR 전략의 한 부분이 되어야

PR의 기능은 다양하다. 위기관리부터 마케팅, 지자체나 정부, 사내 커뮤니케이션 등은 다 각각의 전문성을 요구한다.

그런데 이미 PR인들이 능력과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는 해외와 달리 국내에서는 아직도 홍보 업계에서 기사 몇 개 내는 정도를 PR로 아는 사람들이 많다. 그가 ‘PR을 PR하다’라는 말을 하게 된 것도 그 이유에서다.

국내 PR업계도 SNS의 대두와 국제적 경쟁의 가속화 등과 더불어 타 업종과의 경계가 허물어져가는 추세다. 김 대표는 2020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도 PR업의 전문화를 역설한 바 있다.

올해 11월 발행된 신간 ‘PR인의 꿈, 그리고 성공’에서 그는 PR인들의 체계적·전문적 지식과 어느 정도의 업계 진입장벽, 윤리성, 그리고 협회의 역할 등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우리 PR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요소로는 무엇이 있을까.

김 대표는 문제요인 중 하나로 가격 경쟁을 꼽는다. 예산이 정해져있고 그 안에서 크리에이티브로 경쟁하는 구도가 아니라 가격으로만 경쟁이 된 기조가 지속되면서 고객도 점차 비싸도 좋은 퀄리티의 PR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더 저렴한 선택지를 찾는 쪽으로 시장이 맞춰져있다는 지적이다.

“단가 책정의 예를 들자면 광고계는 사업을 할 때 광고 대행사가 가져갈 수 있는 퍼센티지가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PR은 그런 게 없어요. 정부 용역 같은 것도 공개 입찰 경쟁이 이뤄지는 양상을 보면, 경쟁사끼리 가격을 자꾸 내린단 말입니다. 그리고 제일 싸게 부르는 사람이 가점을 받고 입찰을 얻어내죠.”

“정부나 단체 예산이 나왔다면 이걸 최대한 활용해서 더 수준 높고 효과 좋은 제안서를 선택하는 게 올바른 일 아니겠습니까. 물론 가격 가점이 많은 건 아니지만, 이것도 한 문제 요인이 된다는 겁니다.”

김 대표에 따르면 PR업이 인정받을 방안은 적은 비용으로 많은 효과를 거두는 PR의 비용 효율적(Cost-effective) 측면을 기업들이 제대로 아는 것이다.

그러나 싼 값에 맡긴 PR의 절대적인 질을 보장하기 어려워지면서, 고객도 점차 PR의 비용 효율을 의심하며 PR 대행을 맡기는 데 소극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대기업의 PR을 전문 PR회사들이 맡아서 시행하는 해외와 달리, 우리나라의 대기업들은 대체로 PR을 내부에서 자체 인력으로 하고, 일부 전문적인 부분만 떼어 PR회사에게 맡기는 기조가 형성되어있다. 게다가 여전히 국내에선 PR피(비용)나 PR회사들의 매출이 얼마인지 알 수가 없다. 자연히 시장 규모와 업체 현황 파악도 어렵다.

능동적인 사전 대응과 진정성 있는 위기 관리를 꿈꾸며

김 대표는 작금의 PR업계가 과연 고객이 기쁘게 지불할 마음이 드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지부터 점검해보고 수동적인 태도를 탈피할 것을 주문했다.

“PR은 고객이 하라고 해서 하는 게 아니고 먼저 앞서나가서 고객을 이끌고 가는 일입니다. 시키는 것만 해선 아무것도 안 되는 거예요. 비용을 지불해도 나한테 뜯긴다는 생각을 안 하고 정말 기쁜 마음으로 줄 수 있게 해야지. 요즘 보면 위기관리도 이미 엎질러진 물 닦는 데만 급급합니다.”

“우리(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가 사전에 위기관리를 하라고 해도 기업들이 비용 아깝다고 그걸 안 해요. 그러다 보니 문제가 해결이 안 돼요. PR기업협회에서도 에델만이나 버슨마스텔러(현 BCW 코리아)같이 국제적인 PR회사가 나간 상태입니다.”

“브랜드들로서도 한국에서 PR에 대한 인식이 좀 달라져야 이들 브랜드가 차지할 시장의 파이가 더 커지잖아요, 그런데 이들이 탈퇴해버린 데에는 우리도 관리를 못한 차원의 문제도 있습니다.”

사전 대응이 어렵다면 사후 대처라도 잘하면 좋겠지만, 이마저도 쉬운 일은 아니다. 김 대표는 ‘진정성’(Authenticity)라는 단어로 일부 기업들이 보이는 허술한 위기관리 행태를 지적했다.

예를 들어 대기업 CEO가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과를 한다면, 자기 딴에는 가식이 없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그 사과를 가슴에서 우러나온다고 봐줄지는 미지수라는 뜻이다.

“우리 기업 회장들은 얼마나 진정성이 있을까요. 대기업들은 자기에게 위기가 오리라고 생각도 못해요. 그러니 사전에 위기를 짐작하고 커뮤니케이션 담당 임원 등이 제동을 걸 수 있게끔 제도적인 장치를 만들어내고, 전문적인 위기관리 회사가 위험요소를 체크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자만을 하고 자기가 최고라는 투로 무책임하게 굴고 있어요.”

위기 관리 PR의 중요성을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김경해 대표에게 기업 중에서 효과적인 위기관리로 주목하셨던 사례를 물어보니 미국의 연방위기관리청 이야기가 나왔다.

“기업은 아니지만, 본받을만한 사례가 있다고 하면 미국의 FEMA(Federal Emergency Management Agency, 연방 위기관리청) 예시를 들 수 있겠네요. 2014년에 조 알바우(Joe Albaugh) 전 FEMA 청장을 초청하려고 미국에 갔을 땝니다. 여기가 미국 캔자스 주 위치타라는 도시에 있어요.”

“이 도시가 미국의 한복판에 있는데, 왜 나라 한가운데 있냐면 항공산업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핵심은 방위 산업을 어디에서도 공격하기 어렵도록 미국 제일 중심에 갖다 놓는다는 자세입니다.”

“미국이라는 큰 나라가 이렇게 위기를 사전에 대비하는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 기업과 정부도 위기관리 측면에서 사전 대응 방식에 대한 메시지를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외국 매체를 통한 PR 네트워크 구축

SNS(소셜미디어)가 MPR의 활동 범위를 넓혀주면서, PR인들의 역량 중 신속한 대응과 국제적 감각이 두드러지고 있다. 기업의 행보에 국경이 없는 것처럼, PR회사도 기업과 정부의 외국 관계가 있을 때 양질의 해외 매체와 신속히 소통할 전략을 세워놔야 한다.

김 대표는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가 3년간 PR업무를 담당했던 전북 익산에 소재한 식품전문국가산업단지인 ‘푸드 폴리스’를 예로 들어 우리 기업의 효과적인 아웃바운드 PR을 설명했다.

“외국인 투자를 받으려고 투자설명회를 하는데 홍콩에 가서 한 100명에서 150명 대상으로 하려니 국제 프로모션 기업들이 3억원을 내놓으라는 겁니다.

“그런데 농림축산식품부에 내가 잘 아는 사람이 있어서 세계적인 농식품 분야 전문 잡지의 편집부장이나, 편집국장, 특집부장 등을 한국에 초청해서 팜투어(familiarization tour)를 시켜줬죠.우리나라 식품 산업 전망, 익산을 발전시킬 계획도 설명해줬는데, 한 10개국 정도를 해주니 영국에선 커버스토리로 표지에도 그 사진을 실어주는 등 효과가 좋았죠.”

“생생한 현장 르포를 써주니 투자를 결정하는 CEO들도 10~15페이지씩 나온 푸드폴리스 특집 기사에 주목할 수밖에요. 해외로 나가 투자 설명회를 번거롭게 여는 것보다 더 ‘비용 효율적’인 결정이었습니다.”

물론 국제적인 네트워킹은 혼자서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는 현재 국제적으로 PRWA(PR World Alliance)나 여타 네트워크 3곳 정도에 가입을 해서 10년 이상 관계를 맺어오고 있으니까요. 이런 네트워크는 약 70~80개국을 아우른다.

네트워크 구축이야말로 PR회사들의 ‘린치 핀’(대체 불가능한 특유의 솔루션)이라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현지 PR 대행사와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으면 문화적인 충돌과 초기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고, ‘한국 내에 있는 PR회사를 접촉하면 어느 정도의 성과가 나올지’ 외부에서 가늠하기도 더 수월해진다.

다가오는 해, 두드러지는 인간미와 기술 규제 필요성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다가오는 2024년의 키워드를 ‘휴먼 터치’(인간미)로 정의했다. 우리가 기계와 인공지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인간미에 주목하게 만들고 있다.

물론 기계와의 동거는 불안한 부분이 많다. 갈수록 불거지고 있는 AI로 생성한 콘텐츠의 저작권 문제도 중요한 이슈다. 생성AI 자체가 저작권과 개인정보를 침해한다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외신도 올해 초부터 생성AI 규제를 두고 서로 다른 이해집단의 충돌을 조명하고 있다.

첨예한 사안인만큼 빅테크 기업과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입장이 다르고, 미국 뉴스 미디어와 국제기구, 나아가 각국의 입장도 다르다. 그러나 김 대표는 AI기술이 각 집단의 이해관계에만 매몰되면 인류에게 큰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AI기술에 대한)적절한 규제를 할 시기는 바로 지금입니다. 규제에 대한 하나의 표본도 만들어서 사람들이 알게 해야돼요. 게다가 요즘은 잘못된 정보를 일컫는 미스인포메이션보다정보를 악의적으로 조작해 유포하는 디스인포메이션(Disinformation) 개념이 더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PR회사들로서는 한 번 돌기 시작한 페이크 뉴스를 막을 방법이 없어요. PR회사들도 페이크 뉴스를 조기에 발견하고 대처할 수 있는 솔루션을 하나 꼭 만들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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