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 : 서태지, ‘시대유감’

카지노 : 지난해 크리스마스 시즌에 미국과 영국에서 재밌는 일이 있었다. 1958년 브렌다 리가 부른 <로킹 어라운드 더 크리스마스 트리>가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고, 1984년 왬이 발표한 <라스트 크리스마스>가 영국 차트 1위에 오른 것이다. 브렌다 리에게 1위 자리를 내준 노래는 머라이어 캐리의 1994년작 <올 아이 원트 포 크리스마스 이즈 유>였다.

주식 : 세 곡 모두 20세기 노래이자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어김없이 들리는 노래다. 크리스마스 특수를 고려해도 한 세대 이상 지난 노래들로 채워진 일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최신곡 가운데 좋은 곡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레트로가 유행이기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대중의 신곡에 대한 개념이 바뀐 것도 한몫한다. 다시 말해 스트리밍 시대에 접어들면서 신곡은 새로 발매한 곡이 아니라 '내가 처음 접한 곡'이 됐다. 라디오와 TV를 통해 접하고 LP와 CD를 사던 행위에서 유튜브와 스포티파이를 통해 검색하고 보고 듣는 행위로 행태가 바뀌며 철 지난 곡이라도 처음 듣는 곡이면 신곡이 되는 셈이다.

걸그룹 에스파가 2024년 리메이크한 '시대유감'

뮤직 비즈니스로서 리메이크

대중의 소비 행태가 바뀌자 제작자의 시선도 바뀐다. 신곡끼리 경쟁도 벅찬데 예전 히트곡이 시간을 거슬러 현재에 등장하는 상황이라면 굳이 신곡에 힘을 쏟기보다 검증이 끝난 히트곡을 리메이크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 무엇보다 작사, 작곡에 드는 품을 덜 수 있고 대중에게 익숙한 곡이라 편곡만 잘하면 신상품처럼 유통할 수 있다. 여기에 추억의 곡을 리메이크한다는 화제성은 대중의 호기심과 시선을 끌기도 쉽다. 뮤직 비즈니스 측면에서 리메이크는 저비용 고효율이 가능한 매력적인 아이템이 아닐 수 없다.

대형 기획사인 SM 엔터테인먼트가 이런 흐름을 놓칠 리 없다. K팝 역사를 재조망한다는 기획에 따라 'SM 리마스터링 프로젝트'를 2021년부터 진행 중이다. 이번에 소환된 노래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時代遺憾)>. 걸그룹 에스파(aespa)가 리메이크해 1월 15일 공개했다. 이에 앞서 1월 12일 서태지는 <시대유감> 뮤직비디오를 제작해 공개했다. 며칠 간격으로 1995년 노래인 <시대유감>이 29년 만에 뮤직비디오와 리메이크작으로 발표된 것이다.

서태지와 에스파의 <시대유감>

서태지의 뮤직비디오는 가사를 은유해 진행된다. '거 짜식들 되게 시끄럽게 구네'라는 가사로 상징되는 시대의 억압은 주인공을 쫓는 괴물과 마주한 화면이 하나씩 주인공의 얼굴을 덮어 얼굴을 잃는 것으로 표현하고 그렇게 자신의 얼굴을 잃은 채 쫓기던 주인공은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맞서며 마침내 자신의 얼굴을 되찾는다는 줄거리로 진행된다. 억압과 저항을 상징해 애니메이션에 담은 것이다.

반면 에스파의 리메이크작에서는 원곡을 둘러싼 시대적 고민과 저항은 찾아보기 힘들다. 메이킹 인터뷰에서도 1995년 <시대유감>을 둘러싼 사건과 의미는 언급하지 않은 채 도발적인 가사가 멋지다는 이야기만 나눈다. SM 엔터테인먼트도 "원곡이 주로 현실에 대한 비판을 강조했다면, 랩 메이킹에선 바뀐 현실 속에서 한층 자유로워진 너와 나의 모습을 표현"하려 했다고 설명한다. 가수와 소속사 모두 <시대유감>은 단지 유명 가수의 히트곡이라는 인식에 머문다. 사전검열 철폐를 위해 자신을 바친 선배들의 노고에 감사한다는 문구나 인사말도 없다.

조선총독부의 '레코드 취체 규칙'

주지하다시피 <시대유감>은 1933년부터 존재하던 사전검열을 철폐한 계기가 된 곡이다. 지금은 사전검열이 뭐지 싶겠지만 일제 강점기부터 창작자를 옥죈 사슬이었다. 1930년대 유성기가 널리 보급되자 약 200만 장의 음반이 팔릴 정도로 음반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에 조선총독부는 '레코드 취체 규칙'(취체取締는 '규칙, 법령, 명령 따위를 지키도록 통제'한다는 뜻이다)을 제정해 치안을 방해하고 풍속을 해칠 염려가 있으면 도지사가 음반의 제조, 판매, 수여, 연주를 금지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어용신문인 경성일보 1934년 2월 2일자를 보면 '레코드 취체 규칙'이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알 수 있다.

"작년 5월 단속규칙이 제정되어 일반 출판물과 마찬가지로 검열단속을 시작한 바, 예측대로 불량 레코드가 속속들이 발견되었다. 작년 말까지 약 7개월에 걸쳐 치안과 풍속을 해치는 것이라고 인정되어 행정처분을 당한 것이 44종에 7천여 매에 달했다."

일제 말이 될수록 검열제도는 강화되어 사랑과 연애 감정을 표현하는 곡마저 '풍속괴란'으로 금지하고 압수했다. 특히 태평양전쟁 이후부터는 사기를 돋운다며 일본 군가만 허락하고 다른 노래는 모두 금지했다. 재즈도 '적성(敵性) 음악'으로 분류했다. 심지어 국체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찬송가도 가사를 수정하거나 금지했다.

해방 후 독재정권에서 강화된 검열

1945년 해방 후에도 왜색을 단속한다며 '치안관계법'으로 통제는 계속됐고 1957년 KBS는 '음악방송위원회'를 구성해 대중가요 심의제도를 마련한다. 5‧16 쿠데타 이후 '방송법' 제정으로 '음반사전심의제'를 시행하고 1975년 '긴급조치 9호' 발표 이후 '공연법' 개정으로 '공연윤리위원회'(공윤)의 검열은 한층 강화한다. 공윤의 사전심의를 통과한 노래만 음반 제작이 가능했고 음반 제작 후에도 사후심의를 통과한 음반만 배포할 수 있었다. 사전·사후심의, 이중검열을 시행한 셈이다.

또, 공윤 심의를 통과해도 방송윤리위원회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면 방송될 수 없었다. 공윤과 방윤의 횡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미 대중에게 알려진 곡들도 사후심의를 통해 금지곡으로 지정했다. 김민기의 <아침이슬>, 송창식의 <고래사냥>과 <왜 불러>, 정미조의 <불꽃>, 신중현의 <설레임> 등이 이들의 횡포에 금지곡으로 묶였다.

한편, 공윤은 '적성 국민의 표현물을 금지'한다며 공산권 출신 작곡가의 작품과 오케스트라의 공연은 물론 음반 판매도 금지했다. 작품 내용을 고려하지 않은 반공의 잣대이자 냉전의 산물이었다. 1983년에 이르러 1917년 러시아 혁명 이전의 고전음악을 허용했고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서야 동구권 예술작품을 허용했다.

정태춘, 사전검열 철폐 투쟁 전면에 나서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에 발맞추어 소위 '민중가요'인 저항가요가 등장했다. 민중가요는 공윤을 비롯한 독재체제에 저항의 뜻으로 사전심의나 허가 없이 테이프를 제작·배포했는데 이는 사전심의제 폐지운동의 토양이 됐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 열기에 힘입어 공윤은 <아침이슬>을 비롯해 186곡을 해금했다. 반가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야만의 시대가 끝나지는 않았다. 1990년 7월 최백호, 김수철, 이정선 등 51명은 '음반 및 비디오에 관한 법률'(음비법) 철회와 사전검열 철폐를 요구했다.

사전검열 문제를 적극적으로 공론화하고 나선 이는 정태춘이다. 정태춘은 같은 해 10월 성명서 수준이 아니라 공윤의 사전심의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사전검열 철폐 투쟁에 나섰다. 자신의 음반 <아, 대한민국>을 공윤의 심의를 거치지 않고 제작·배포한 것이다. 그의 불복종 투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92년 장마 종로에서> 음반도 사전심의 없이 제작·배포한다. 어느덧 TV나 라디오에 나오는 가수가 아니라 집회나 시위, 파업 현장에서 노래를 부르는 '거리의 가수'이자 활동가로 변신한 그를 보기는 어렵지 않았다.

2장의 음반을 공윤을 거치지 않고 발매하자 문화관광부는 음비법 위반이라며 고발하고 검찰은 불구속 기소했다. 정태춘은 즉각 불복하고 사전심의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한다. 음반의 사전심의 강제는 헌법 제21조 제1항 표현의 자유와 제2항 검열금지의 원칙 및 사전제한금지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주장이었다. 이제 헌법재판소의 판단만 남았다.

사전검열 철폐에 분수령이 된 <시대유감>

1995년 서태지와 아이들 4집에 수록된 <시대유감>을 둘러싼 서태지와 공윤 사이의 갈등은 사전검열 철폐 여론에 불을 붙였다. 공윤은 <시대유감> 가사 중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 '모두를 뒤집어 새로운 세상이 오길 바라네' '네 가슴에 맺힌 한을 풀 수 있기를'이란 대목이 자극적이고 현실을 부정적으로 그렸다는 이유로 개작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서태지와 아이들은불응한 채 보컬을 뺀 연주곡만 담아 발표했다. '거 짜식들 되게 시끄럽게 구네'라는 공윤에게 반발한 것이다. 서태지는 한 인터뷰에서 '낙태 당한 느낌'이라고 심경을 표현했다. 당시 제1야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도 '서태지와 아이들 음반 관련 진상조사 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사전검열은 사회적 이슈이자 정치적 이슈로 커졌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사전검열

1996년 6월 마침내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정으로 사전검열은 폐지됐다. 이제 창작자는 누구 눈치를 보거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어졌다. 일제 강점기부터 창작자를 옥죈 족쇄가 풀린 쾌거이자 지난한 투쟁의 성과였다. 이를 기념해 정태춘·박은옥을 비롯한 여러 뮤지션이 참여한 '자유' 공연이 열렸으며 서태지와 아이들도 보컬이 들어간 온전한 싱글 CD를 발표했다. 이런 노랫말로 시작하는 <시대유감>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왜 기다려왔잖아 / 모든 삶을 포기하는 소리를 / 이 세상이 모두 미쳐버릴 / 일이 벌어질 것 같네'

그리고 29년이 지난 2024년 1월, <시대유감>이 다시 돌아왔다. 저항은 박제된 채 형식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러나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라는 구절은 여전히 가슴을 치는 요즘이다.

서태지가 2024년 발표한 '시대유감' 뮤직비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