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 강화 법안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 [박성철의 ‘새 법 다오’]

주식 : 최근 한 달 사이 10건 넘는 개정안이 쏟아진 법률이 있다. ‘교원의 지위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이다. 7월27일 서동용 의원이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제안 이유를 보면, 최근 교사들이 아동학대 범죄로 신고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한다. 막연한 짐작이나 뜬소문은 아니다. 통계를 제시했다. 아동학대로 신고된 초중등 교원의 수는 2020년 136명, 2021년 449명, 2022년 634명으로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재원 : 아동학대로 실제 징계를 받은 교원은 2020년 73명, 2021년 75명, 2022년 100명이라고 한다. 신고당한 숫자와 차이도 커지고 있다. 2022년에만 교사 534명이 무고 앞에 불안에 떨며 상처를 입은 셈이다.

고소당하고 수사받는 일은 고통스럽다. 형사처벌을 받을 만한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도 피의자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매일 밤 압수수색을 당하고 체포되는 꿈, 구속되는 꿈에 시달린다고 호소하는 의뢰인들을 여럿 보았다. 마침내 무혐의 처분을 받게 되더라도 이미 마음속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남는다.

교사들도 그렇다. 나중에 잘못이 없었다고 밝혀지더라도 그 자체로 불명예가 된다. 모욕감과 불안감, 언뜻 보아 어울리기 힘든 두 감정이 뒤섞이기도 한다. 사기가 저하된다. 의욕을, 자부심을 잃게 될 것이다.

위 개정안에는 교사를 보호하는 방안으로 교육활동분쟁조정위원회 신설안이 담겼다. 수사기관의 조사나 기소 전 단계에서 분쟁을 조정할 수 있는 기구다. 교원과 학부모, 교원과 학생들이 내부 절차에서 먼저 분쟁을 해결하도록 했다. 학교라는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려는 시도다. 학교의 교육자치가 살아나야 한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8월1일 김용민 의원 대표 발의안에서는 교원이 학생생활지도 행위를 하면서 발생한 책임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라는 조건을 달고 있다. 이때 관할청은 수사 및 재판 절차에서 처벌하지 않거나 감형할 것을 관계 기관에 건의할 수 있도록 했다. 면책의 구체적 기준이나 운영 절차는 대통령령에 위임했다. 시행령에서 어떻게 면책의 잣대를 더 구체화할지 예상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관할청의 건의도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 든다.

교원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을 담더라도 합당하고 정교한 내용으로 해법이 구현되지 않으면 또 다른 반목과 갈등의 씨앗이 되지 않을까. 교원들의 요구는 무엇일까. 잘못이 있더라도 책임을 면하거나 감경해달라는 게 아니라, 부당한 책임 추궁과 괴롭힘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것 아닐까.제재 위주 대응으로 해결할 수 없는 현실

8월8일 강민정 의원 대표 발의안은 현장 교사들의 목소리를 더 담았다. 교육활동 침해행위에 ‘민원’을 추가한 내용이 눈에 띈다. 악성 민원을 규정했다. ‘동일 내용 반복·억지 민원, 일방적인 장시간 통화, 상습 강요 민원 등 목적이 정당하지 아니한 반복적·장시간·강제성·강요성 민원’이라고 규정했다. 서글프다. 민원을 법으로 규제하는 안이 제출될 정도로 학교 현장이 황폐화되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악성 민원을 따로 정의하긴 했으나, 반복·억지·장시간과 같은 개념은 여전히 모호하다. 또 다른 다툼의 여지가 된다. 교사 개인이 홀로 민원에 노출되고 감당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학부모 의견이 학교로 전달되는 소통의 방식을 더 세련되게 제도화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위 법안에서는 관할청의 고발 의무 요건도 완화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관할청의 고발 의무에 전제가 있다. 피해를 입은 교원이 요청하는 경우다. 교육활동 침해행위가 있고 그 사실을 보고받은 관할청이 침해행위가 관계 법률의 형사처벌 규정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면 교원의 요청을 받아 관할 수사기관에 고발해야 한다.

개정안에서는 일부 문구를 삭제했다. ‘피해를 입은 교원이 요청하는 경우’라는 대목이다. 교사의 요청과 무관하게 고발하도록 의무화했다. 학교, 교사, 학부모가 서로를 형사고소·고발하는 악순환을 불러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교육활동 침해행위에 대응하는 데형사처벌이 능사일 수는 없다. 어떤 갈등의 국면에서도 형사처벌은 최후의 수단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제재 위주의 피상적 대응으로 학교 현장의 깊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8월30일 윤상현 의원 대표 발의안 역시 학교 현장에 애정과 시간, 예산을 투여하는 방안이 아니다. 교육활동 침해행위로 조치받은 내용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도록 하는 법안이다. 제재 처분으로 억누르는 방식이다. 지금도 학교폭력 관련 조치사항을 학생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처분과 관련한 소송이 넘쳐나고 있다. 처분을 다투는 행정소송, 효력정지 신청이 더 늘어날 것이다. 도리어 학교의 자율성이 더 무너지지 않을까 염려된다.

교원, 학부모, 학생 어떤 대상을 향해서든 채찍만 휘두르지 않길 바란다. 처벌과 제재 유무에만 얽매이지 않기를 바란다. 헌법이 천명하는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보장하는, 학교의 자치 문화를 드높이는 법과 제도를 기대한다.기자명박성철 (변호사)다른기사 보기 [email protected]#교권#교사#학생인권#학부모#서이초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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