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자사주 매입=시세조종” vs 삼성 측의 반박용 가상 시나리오

[한민철 기자의 법정 취재파일] 이재용 삼성 재판 (15) 제일모직 자사주 매입 논란(1)

檢 “제일모직 경영상 필요 없었음에도, 합병 위한 무리한 자사주 매입” 주장
당시 내부자 “주가하락으로 업무 마비…자사주 매입 방안 낼 수밖에 없었다”

ai주식/주식ai : 더피알=한민철 기자 | 2015년 5월 26일 결의된 제일모직-삼성물산의 합병안은 엘리엇 등의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52일 뒤인 7월 17일 임시 주주총회를 통과했다. 합병기일인 9월 1일까지 46일을 남겨둔 시점에서 삼성 측은 안심할 수 없었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기간’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카지노 : 당시의 삼성에게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는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은 일이었던 ‘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 합병 무산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이슈였다.

2014년 하반기 두 회사는 전격 합병을 발표했지만 이후 주가가 오르지 않자 국민연금 등 합병에 반대하는 주요 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했고, 결국 그해 11월 19일 공식적으로 합병계약을 해제할 수 밖에 없었다. 두 회사뿐 아니라 그룹 주요 계열사 주가에까지 악영향을 끼친 사건이다.

국민연금 등 주요 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한 계기에 대해 시장에서 “시너지 설득에 실패했고, 합병으로 오히려 부실이 더 커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며, 삼성그룹의 이미지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안이 통과됐지만 바로 전 해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었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기간인 2015년 7월 17일부터 8월 6일까지 사이에 두 회사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격(보통주 1주당 제일모직 15만 6493 원, 삼성물산 5만 7234 원) 이상으로 형성돼야 합병 무산을 막을 수 있었는데, 얄궂게도 두 회사의 주가 흐름에 불안이 감지됐다.

제일모직 주가는 7월 17일 종가기준 19만 4000 원이었으나 7월 23일 종가기준 17만 2500 원까지 떨어졌고, 삼성물산 주가도 같은 기간 6만 9300 원에서 5만 9100 원으로 하락했다. 두 회사 주가 모두 각자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격에 근접한 것이다.

특히 물산의 주가는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격에 불과 주당 2000 원의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상황이어서 언론에서도 두 회사의 주가 하락이 주주들의 대규모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이에 7월 23일 제일모직은 이사회를 열고 4400억 원 규모의 자사주 250만주의 매입안을 발표했다.

檢 “경영상 필요 없음에도 합병 위한 시세 조종성”

이재용 회장 등 삼성 전·현직 임원 13명에 대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통칭 제일모직-삼성물산 불법 합병 의혹) 사건에서 검찰은 합병 당사자가 아닌, 삼성 미래전략실(미전실)의 판단과 지시 아래 모직의 자사주 매입이 이뤄졌다고 봤고, 그 과정에서 인위적 주가 부양을 위한 시세조종이 이뤄졌다고 검찰은 주장했다.

당시 삼성물산의 경우 이미 6월 11일 자사주 전량을 KCC에 처분한 바 있다. 증권거래법상 자사주 처분 후 3개월 내에는 이를 취득할 수 없어 물산에는 자사주 취득을 통한 자체 주가 부양 방안이 없는 상황이었다.

관련기사 : KCC의 ‘삼성 백기사’ 역할이 부적절했다는 검찰 주장 살펴보니…

이 사안과 관련해 검찰이 제기한 의심을 요약하면, ‘당시 모직의 경영상 필요가 없음에도 합병 상대방인 물산의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격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자사주 매입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피고인 이재용 등은 합병 비율이 고정된 결과, 모직 주가가 상승하면 물산 주가도 동반 상승하는 동조 효과를 이용해 모직의 자기주식을 매입으로 모직과 물산의 주가를 함께 부양하고, 이를 통해 물산 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최소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모직 주가는 2014년 12월 18일 상장일 종가 11만 3000 원에서 2015년 5월 22일 합병 발표 직전 16만 3000 원까지 44.6% 상승하고, 합병 발표 후 6월 5일 최고가인 19만 7000 원을 기록했다가 자기주식 매입 결정일인 7월 23일에는 17만 2500 원을 기록했다. 따라서 7월 23일 당시 주가가 상장일 및 합병 발표 직전 대비 52.7%와 5.8% 각각 상승한 상태였고, 최고가 대비로도 12.5% 하락에 그친 것일 뿐 달리 주가가 현저히 저평가되거나 급락하는 등 주주가치가 침해될 급박한 위험이 없었으므로, 모직이 ‘주가 안정’을 위해 자기주식을 매입할 경영상 필요가 없었다.”

– 검찰 공소장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압수수색 등을 통해 확보한 이메일 증거에 따르면, 7월 21일 미전실 담당자들은 삼성증권과 골드만삭스 측 관계자에 모직과 물산의 주가 관리를 위해 모직의 자사주 매입안에 관해 문의하고 피드백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전실은 합병 주총 이후 주가가 하락하자, 7월 21일 자문사인 골드만삭스와 삼성증권에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물산과 모직의 주가 관리 방안으로 자사주를 매입하는 안을 검토 중이니 주가 영향에 대한 답을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삼성증권은 이에 대해 예상되는 시장의 부정적인 반응으로 “(물산의) 실적이 좋지 않고 자금이 부족한 상황에서 자사주 매입으로 합병을 성사시키려 한다는 의식이 확산된다”고 기재, “과거 사례를 분석할 때 자사주 매입은 주가 안정화에 도움이 되지만, 엘리엇 측에서 대주주 승계를 위한 합병 성사를 위해 회사 자금을 활용한다는 비난이 예상된다”는 내용 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어 미전실은 골드만삭스에 모직이 자사주를 사서 주가가 오르면 물산 주가가 반드시 오른다는 근거가 입증 가능한 것인지 실증적 확인까지 요청한 사실이 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합병 발표 이후 와 주총 이후, 양사 주가는 상관관계가 매우 높다”는 회신을 줬습니다. 이는 주가가 서로 연동한다는 의미입니다.”

– 2023.9.22.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 2020고합718, 검찰 쟁점 기일 PT

이 쟁점에서 먼저 따져봐야 할 것은, 검찰 공소장 내용대로 ‘당시 모직에는 주주가치가 침해될 급박한 위험이 없었으므로, 주가 안정을 위해 자기주식을 매입할 경영상 필요도 없었다’는 주장이 정말이냐는 점이다.

실제 발생한 결과로는 제일모직-삼성물산의 합병이 완료됐지만, 만약 ‘당시 자사주 매입이 이뤄지지 않아 두 회사의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보다 떨어지고 이로 인해 합병이 무산됐다’고 가정해보자는 말이다.

우선, 삼성그룹 내 계열사 간 합병이라는 대형 프로젝트가 2014년에 이어 2년 연속으로 좌초되는 엄청난 악재다. 비단 합병 당사자인 모직과 물산뿐 아니라, 삼성 계열사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 당연했다.

2014년 5월 이후 와병으로 이건희 회장이 부재하던 상황에서 이재용 당시 부회장의 경영 능력은 의심받게 될 수밖에 없다. 이재용 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제일모직에게 합병 무산은 곧 대주주 리스크이자 회사 주가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재였을 가능성이 높다.

삼성 측은 이 사건 재판 과정에서 이렇게 합병이 무산됐을 상황에서의 가상 시나리오를 제시하면서, 당시 모직의 자사주 매입은 경영상 필요성이 충분했고 주주가치 증대를 위한 최선의 방안이었다고 반박했다.

무엇보다 당시 모직 내부에서는 주가 하락으로 인해 주주들의 항의가 빗발쳐 이에 대한 대처가 시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모직이 자사주 매입을 결정할 정도로 주가가 저평가되거나 하락하지 않았다는 검찰 측의 주장에 반한다.

다음은 당시 모직의 CFO(재무책임자)인 배진한 상무의 법정 증언이다. 배 상무는 2015년 7월 23일 모직의 자사주 매입 결정까지 업무에 관여했고, 이후 삼성중공업으로 자리를 옮겨 전무로 승진했다.

문 : 제일모직은 2015년 7월 23일경 자사주 매입을 결정했습니다. 그 경위는 무엇이었습니까.
답 : 7월 중순 정도로 기억하는데, 주주총회 합병 승인이 이뤄지고 엄청나게 회사 주가가 폭락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후 IR과 자금 파트에 투자자 항의가 빗발치고 회사까지 찾아와 소송을 벌이겠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래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주가 안정 방법을 찾기로 했습니다. 실무자끼리 방법은 있는지 서로 의견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자사주 매입이 좋은 방안으로 제시됐고, IR 파트의 김○○ 부장에 검토를 지시했습니다.
문 : 당시 내부적 판단을 김봉영 모직 사장에게 보고하고 결정을 받았습니까.
답 : 그렇습니다. 보고서를 만들고 지켜봤는데, 주가가 더 빠졌고, 이사회 전 김봉영 사장께 보고를 드리고 승인을 받았습니다.
문 : 모직의 의견을 피고인 이왕익 당시 미전실 자금파트 전무에게도 보고하고 논의했죠.
답 : 보고라기보다 이런 아이디어가 있다는 의견을 드렸고,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 2022.6.22.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 2020고합718, 증인 배진한에 대한 검찰 주신문

문 : 증인에게 증인의 검찰 진술조서 제시합니다. 제일모직의 자사주 매입 경위에 관한 내용입니다. 증인은 검찰에서 “며칠간 모직 주가가 떨어지는 추세가 계속됐고, 당시 IR 파트에서는 주주들로부터 주가 하락에 대한 민원이 빗발친다는 보고를 받게 됐습니다”고 진술했습니다. 또 모직 IR 담당 김○○ 부장에 대한 검찰 진술조서도 제시합니다. 김○○ 부장은 검찰에서 “당시 IR 파트 상황실은 개인 투자자의 항의성 전화가 빗발쳐 정상적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습니다”라고 진술했습니다. 증인에게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주가 자료를 제시합니다. 실제로 모직의 주가는 7월 16일 주당 19만 4000원에서 7월 17일 주총 이후 17만 9000원으로 7.7%가 하락했습니다. 당시 주주들의 항의는 어느 정도였나요.
답 : 도저히 전화상으로 듣기 힘든 욕설이 난무하고, 회사 근무하는 직원들 모두 업무를 하지 못할 정도의 거의 공황 상태였습니다. 투자자들이 사무실 건물 1층까지 찾아와 대표이사를 만나겠다는 상황이었습니다. 회사는 상장 후 그런 상황을 맞닥뜨리지 못했기에 매우 당황한 기억이 있습니다.
문 : 증인은 검사 주신문에서의 증언처럼, 모직의 주가 하락으로 인한 주주들의 불만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자사주 매각을 검토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어떻습니까.
답 : 맞습니다.

– 2022.6.22.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 2020고합718, 증인 배진한에 대한 변호인 반대신문

이재용 삼성 재판 (15) 제일모직 자사주 매입 논란②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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